문서의 임의 삭제는 제재 대상으로, 문서를 삭제하려면 삭제 토론을 진행해야 합니다. 문서 보기문서 삭제토론 영국의 헬레나 (문단 편집) === 결혼 === 헬레나는 어머니에게 순종적이었으며 내향적이고 뚱뚱했다. 남편 앨버트 공이 사망한 후 딸들을 멀리 보내고 싶어하지 않았던 빅토리아 여왕은 헬레나는 결혼하지 않고 자기 곁을 지킬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러나 헬레나는 오빠 [[에드워드 7세]]의 독일어 선생님이었던 카를 룰란트를 좋아하고 있었다. 빅토리아 여왕은 남자와 관련이 없어보였던 딸이 다른 사람도 아니고 고용된 일반인을 좋아하자 깜짝 놀라 카를 룰란트를 해임하고 고향으로 돌려보냈다. 그러나 헬레나는 몇 년 후 새로운 사랑을 찾았다. 자신보다 15살 연상인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의 크리스티안 공자[* 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아우구스텐부르크 가문의 일원으로 [[올덴부르크 왕조]]의 제1분가이자 올덴부르크 왕조 본가가 단절된 이후 1931년까지 올덴부르크 왕조 종가였다. 다음 서열이자 제2분가인 [[글뤽스부르크 왕조|슐레스비히-홀슈타인-존더부르크-글뤽스부르크 가문]]과 가장 가까운 친척이다.]와 결혼하겠다고 한 것이다. 당시 슐레스비히홀슈타인은 [[프로이센]]과 [[오스트리아]], [[덴마크]]가 엮인 복잡한 영토 분쟁 하에 있었다. 크리스티안의 아버지는 분쟁으로 영토를 상실한 상태였으며 크리스티안은 물려받을 작위도, 재산도 없었다. 외교적 문제도 있어서 인해 집안내에서도 헬레나의 결혼은 찬반이 분분했다. 빅토리아 여왕은 딸을 시집 보내고 싶지 않았으며 복잡한 외교 문제에 휘말리고 싶지도 않았다. 그리고 미남을 좋아하는 빅토리아 여왕은 별로 잘생기지 않고 나이든 사윗감이 마음에 들지 않았다. 그러나 헬레나는 진심으로 크리스티안과의 결혼을 원했다. 결국 빅토리아 여왕은 결혼 후에 영국에서 산다는 조건으로 두 사람의 결혼을 허락했다. || {{{#!wiki style="margin: -6px -10px" [[파일:Princess Helena and Prince Christian.jpg|width=100%]]}}} || || 헬레나와 크리스티안 || 헬레나와 크리스티안은 1866년 7월 5일에 [[윈저 성]]에서 결혼식을 올렸다. 아버지와 딸 뻘이었지만 두 사람은 행복한 결혼 생활을 하였다. 헬레나는 남편과의 사이에서 3남 2녀를 두었다.저장 버튼을 클릭하면 당신이 기여한 내용을 CC-BY-NC-SA 2.0 KR으로 배포하고,기여한 문서에 대한 하이퍼링크나 URL을 이용하여 저작자 표시를 하는 것으로 충분하다는 데 동의하는 것입니다.이 동의는 철회할 수 없습니다.캡챠저장미리보기